접싯물에 코박고 죽었다구요? 간질증상 발현과 현실화된 염전익사 위험성의 경합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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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5-27 18:11본문
25센티미터의 염전에 익사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염전 검거”라는 단어를 쳐 본다. “노숙자를 꾀어 염전이나 고기잡이 어선에 팔아넘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노숙자를 염전과 고기잡이 어선 등에 팔아넘긴 혐의로 임 모 씨와 박 모 씨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임 씨는 지난 2월 부산 구포역에서 뇌병변 4급 장애인인 노숙자 박 모 씨 등 2명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고 속여 목포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고 모 씨 등에게 넘기고 소개비로 5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또 임 씨로부터 노숙자를 넘겨받은 고 씨 등은 전남 신안군의 염전 3곳과 해남 장산도의 한 장어잡이 잡부로 125일 동안 일을 시키고 380만 원 상당의 임금을 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라는 뉴스가 줄줄이 뜬다. 지금 실시간의 상황이다.
이번 글의 주인공도 아마 뉴스에서 나온 염전과 같은 곳에서 죽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아침 7시 반에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이는 모터를 가동시키려고 염전에서 100미터 떨어진 숙소에서 나왔다.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그를 찾으러 동료가 염전 뚝방을 나서보니 그는 25센티미터 밖에 안되는 염전에 그야말로 코를 박고 죽어 있었다.
부검감정서는 그의 사인을 이렇게 말한다. “구강과 비강을 비롯한 기도 내에서 백색의 포말과 진흙성분의 이물을 보고, 양측 폐가 부풀어 있으며, 폐 변연부의 기종양 변화를 보는 등 익사에서 관찰될 수 있는 소견을 보며, 폐 조직에서 여러 개체의 플랑크톤이 검출되고, 사건개요상 물이 고여 있는 염전의 바닥에 얼굴 정면을 바닥으로 한 채 쓰러져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익사의 기전으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함. 다만 사망 장소가 낮은 깊이(25 cm)의 수중(염전)인 점으로 내인적 요인에 의해 일시적 자구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물에 빠져 익사한 것으로 생각함” “2009년 9월경 변사자가 갑자기 밥을 먹다가 입에 거품을 물고 의식을 잃었다가 4-5분 후에 깨어난 적이 있는 등 간질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기록을 보는바, 부검 및 의료기록상으로 확인하지는 못하였으나 평소 간질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종합할 때 본건의 경우 어떤 원인에 의해 자구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물에 빠져 익사의 기전이 작용, 사망에 이르렀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 원인으로는 감염성 심내막염에 의한 일시적 심장기능상실 혹은 부검으로 확인할 수 없었으나 간질에 의하였을 가능성이 추정”된다고 한다. 또, “심장의 대동맥판에서 아급성 심내막염의 소견을 보이는 작은 증식을 보나 그 정도로 보아 사인으로는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또한, “간질발작시 위내용물의 흡인에 의하거나 발작 당시의 자세에 따라 입과 코가 막혀 질식사의 기전으로 사망할 수 있으나 본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만일 간질시 위에 있던 음식물이 기도를 막거나 혀가 말려 기도를 막아서 질식했다면 익사와는 무관하게 되므로 난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업주는 “간질발작 있었다”, 가족은 “모르는 얘기”
풍비백산해서 달려온 가족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외딴섬이었던, 사람도 몇 살지 않는 염전지대였다. 자신들은 알지도 못하는 간질발작 이야기가 나온데다가 경찰마저 부검이 필요 없다며 사건을 급히 종료시키기에만 급급했다. 죽은 그의 숙부가 나서 서른세살 생떼같은 장정이 영문도 모르고 죽었는데 부검을 하지 않는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서 간신히 부검을 했다. 4, 5명 되는 동료들도 별 말이 없고, 사업주는 간질 얘기만 했다. 급히 서둘러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신청을 하는데, 사업주는 확인날인도 해 주지 않고, 사건 경위를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경찰조사 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염전을 소개해 주었다는 직업소개소 사장을 찾아 3, 4년간 소개해 준 사업주들로부터 그가 간질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받아 공단에 제출했다.
사업주와 동료들 모두 그가 2차례나 간질발작을 했었다고 진술했고, 공단은 그의 사망은 기존증인 간질발작으로 인한 익사이므로 산재 승인이 되지 않는다 했다. 심사와 재심사청구에서는 그가 간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업무수행중이었으므로 그의 사망은 업무상이라고 주장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심사 재심사를 대리한 노무사님의 노고는 정말 컸다. 남도까지 먼 길을 찾아갔지만 염전에서 문전박대 당하고 염전 사진만 수십장 찍으면서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간질의 기존증이 의심되는 근로자가 톱밥 더미 가운데서 질식사한 사안과 선원이 갑판에서 뒤로 젖혀져 바다에 익사한 사안 모두 업무상사망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일본 노동성의 질의회시 자료를 찾아내 제출했지만 심사결정과 재결 역시 경직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간질이 있었고 간질발작으로 쓰러져 염전에 빠져 살아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경과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의 사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는 16살 때 집을 나가 떠돌이 생활을 하고 1, 2년에 한번씩 집에 왔다 갔을 뿐이어서 그의 반생은 가족들이 알 수도 없었다. 소송 중 부검의에게 어릴 때에는 간질발작을 하지 않던 사람도 성인이 되어 간질발작을 할 수도 있는지에 대해 사실조회를 했다. 그런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아급성 심내막염이란 것도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는데다가, 사업장이나 동료들에게 접근할 수가 없으니 그가 극심한 과로로 면역력이 떨어져 심내막염에 이환되었다는 가능성을 입증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의 작업환경이 재해의 위험 범위내에 있다는 것, 사업주의 관리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인신매매, 강제노역... 사업주의 확장되는 관리의무
짐작하시겠지만, 우리 사무소에서 이 사건의 행정소송을 맡게 되었다. 오히려, 사업주가 그가 간질발작하는 것을 두차례나 보았다고 하니 그의 건강을 관리하고 배려할 의무가 사업주에게 더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었다. 사업주가 공단에 제출한 서류들을 보니 그 생각은 더 굳어졌다. 근로계약서는 구직자, 구인자, 직업소개사업자 3자가 체결하는 형식으로, 그의 서명은 없고 지장만 있으며,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60만원이었다. 한 노트에는 인부들이 취업한 날 100만원에서 130만원까지 선불금을 지급한 사실이 기재되어 있고, 원고 이름으로 된 차용증서에는 취업날 100만원을 차용한다고 되어 있었다. 사업주는 자기가 선불금까지 주었다는 증거로 제출한 것이지만, 이 돈은 직업소개소 사장이 인부들이 취업하기 전에 방 얻을 돈으로 꾸어준 돈이어서 자신이 받았다고 직업소개소 사장이 말하더란다.
인신매매가 횡행한다는 고깃배, 가축농장... 이 염전도 그런 곳? 이러저러한 상상이 스쳐지나갔다. 유족들의 창구는 숙부였는데, 형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았다. 동생이 어떤 사람이었는냐고 물었다. 그는 전북의 농촌에서 3남3녀의 넷째로 태어났는데, 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가 중퇴할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다. 그는 16세에 서울로 올라와 사망한 34세까지 영세 공장, 건설 공사장, 가축 농장 등 가장 험하고 불안정한 직장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게다가 망인은 극도로 내향적인데다가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물리적, 정신적으로 자신을 잘 보호하지 못하여 고용주나 동료들로부터 착취나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망인을 찾아 고향에 데려다 놓으면 어느 새 친구들이 망인을 꼬여 집을 나가곤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는 영세한 사업장에서 부정기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술 담배, 도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쓸 일도 없었는데, 보통 임금이 체불되거나 받은 임금을 친구나 동료들에게 빌려 주거나 빼앗기는 일이 많았다. 이 와중에 그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염전에 취업하게 되어 봄부터 가을까지 일하고, 겨울을 난 다음 다시 염전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염전에 있던 인부들이 어떻더냐고 물었다. 사건 직후 가족들은 숙소에 가 볼 수 있었는데, 숙소는 4, 5명이 한 방에서 잠을 자는 허술한 곳이었고, 인부들은 모두 5, 60대들로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단다. 지능이 조금 떨어지거나 사회적으로 제대로 적응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염전. 뙤약볕에서 웃통을 벗은 채 밀대로 소금을 모으는 인부의 찌푸린 얼굴. 심사청구를 맡았던 노무사님이 찍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생각. 무공해 자연산이라 열광하는 천일염은 바로 사람의 소금이렸다! 고가의 수제 축구공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손에 피를 흘려가면서 한땀씩 꿰맨 것이라더니... 내막을 확인할 수 없어서 그렇지, 조수간만에 맞추어 염전에 바닷물을 들이고 빼고 하려니 밤이나 새벽에도 염전 관리를 했을 터다. 그가 아침 일찍 염전에 나간 것도 다 그런 이유일 것이고, 5, 60대 사이에서 젊은 축인 그가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세끼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일도 같이 하고. 그쯤 되면 사업주의 지배관리 범위는 통상 출퇴근하는 직장보다 더 넓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가 간질발작하는 것도 두 번씩이나 보지 않았던가.
“평균인에게는 위험하지 않지만 간질환자에게는 위험한 작업환경”
선고를 얼마 남기지 않은 날 저녁 서해안 염전들에 돈을 받고 인부들을 팔아넘긴 사건이 적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옳거니! 몇가지 사실로 추론을 제기하고 거기에 상상을 덧붙여 서면을 제출했는데, 실물이 나온 것이다. 판사님도 TV를 보시겠지. 흐흐!
재판부는 그의 죽음이 업무상재해라고 판단했다. “① 망인이 이 사건 염전에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던 중에 염전의 바닷물에 빠져 사망에 이른 점. ② 이 사건 염전의 사업주가 망인이 간질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③ 평균인에게는 위험하지 않은 염전에 고여 있는 깊이25cm 정도의 얕은 바닷물도 간질환자인 망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하면 망인에게는 익사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작업환경에 해당하는 점, ④ 망인이 업무와 관련 없이 기존질환인 간질 발작으로 인해 갑자기 의힉을 잃은 것으로 보이나, 망인이 간질 발작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염전에 고여 있는 바닷물에 빠져 익사하였으므로 간질 증상의 발현과 현실화된 작업환경의 위험성이 서로 경합하여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고 봄이 상당한 점에 비추어 보면, 간질을 앓고 있던 망인이 염전에서의 작업 도중 발작을 일으켜 바닷물에 빠져 익사한 것은 망인의 업무수행중에 통상적으로 따르는 위험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사고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사건은 항소심에 계류중이다.
유족보상 사건을 하다보면 대부분 죽은 사람은 신화와 선행, 그리고 헌신의 화신이 되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 가족들의 추억 속에서 희미해지겠지만, 그래도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늘 가족들의 가슴 속에 있다. 내게도 조금은 그것이 전달돼서 망자에 대한 애틋함과 동정이 자리잡곤 한다. 가족들과도 일찍이 헤어진 그의 경우, 그에 대한 나의 특별한 감상이 있지는 않았다. 조금은 희극적인 죽음이라는 생각마저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이다. 그는 이 판결문을 보고 위안이 됐을까? 아니, 그것은 산 사람들의 일일까? 그의 죽음이 산재라고 하든 아니든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그는 그저 자신의 죽음을 조금은 억울하게 생각해 달라고 바라는 걸까? 그래요! 세상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있답니다. 그래도 산 사람들이 이런 건 산재다, 이렇게 정해놓고 지키는 건 무조건 아름다운 겁니다잉!
법무법인(유)한결 공인노무사 정 경 심